주의!
영화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감상평입니다. 만약 영화를 보시지 않았거나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면 다음에 찾아와 주세요!
이번에 본 영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자 감독 인생을 모두 담은 영화라고 하여 영화관에서 보았다. 솔직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초중학교때 기말고사가 끝나고 선생님들이 틀어주시던 원령공주,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며 "이런 만화도 있구나" 정도의 인식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천재라고 말하지만 필자는 이 분야에 무지하기에 왜 천재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항상 작품 안에는 메세지가 담겨있고 그 메세지는 필자의 생각을 자극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는 필자에게 많은 메세지를 던졌다.
마히토와 어머니
영화 초반에 마히토의 어머니가 병원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친동생은 나츠코와 결혼을 한 뒤 마히토의 새 어머니가 되며 마히토는 나츠코의 저택으로 간다. 여기서 마히토는 어머니에 대한 꿈을 계속 꾼다. 그러던 중 사람 말을 하는 왜가리가 마히토에게 어머니를 보러 가자며 말을 건다. 마히토는 이것이 거짓말인 것을 알지만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에 왜가리를 따라 어머니를 보러 간다. 그러나 왜가리를 따라가 본 어머니는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리움에 어머니를 만지자 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왜가리는 이런 모습을 보며 손대지 않았다면 더 오래 갔을 거라는 조롱섞인 말을 한다.
어머니를 잃고 왜가리를 따라간 부분에서 마히토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등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살릴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어머니라에 대한 그리움이 계속 꿈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죽고 사라진 어머니를 찾는 모습을 조롱하는 듯한 왜가리의 말은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현실을 내버려두고 과거의 잔재만을 찾는 사람의 어리섞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마히토와 저택 아래의 바닷가
마히토의 활에 부리를 관통당한 왜가리는 힘을 잃고 만다. 마히토는 왜가리에게 사라져버린 나츠코가 어디있는지 묻자 정체불명의 남자가 왜가리에게 마히토를 인도하라고 한다. 그를 따라간 세계는 바닷가. 많은 범선들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황금색 문 앞에 도착한 마히토는 펠리칸에 의해 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문이 열린 것을 안 키리코는 무덤을 진정시키는 의식을 행한 뒤 마히토와 함께 항해를 한다. 이후 마히토는 바다를 항해하는 죽은 사람들을 만나고 키리코는 죽은 사람들은 살생을 할 수 없으며 자신만이 살생을 할 수 있기에 물고기를 잡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다를 항해하는 죽은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이 진짜 죽은 사람들인지 생명을 가진 죽음인지 궁금했다. 영화에서는 이 세계는 대부분 죽어있다고 했다. 그러면 살아있는 것도 있다는 말이다. 죽은 자들은 키리코의 깃발을 보고 물고기를 얻으러 오며 스스로 물고기를 먹을 수 없다. 지금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비슷한 것 같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사는 사람들, 자신의 의지와 자신만의 의미를 가지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과해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력하게 아무런 목적지없이 그저 깃발만을 보고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니는 죽은 사람들이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현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깃발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돈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유행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세상이 시키는 대로 아무런 목적없이 좇는 것이다.
와라와라와 펠리칸 그리고 히미
마히토가 키리코의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은 뒤 밖에서 와라와라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본다. 키리코는 와라와라가 성숙해지만 몸을 부풀려 하늘로 올라가고 위 세상에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설명해준다. 아름답게 하늘로 올라가던 와라와라들을 보며 감탄하던 중 펠리칸들이 날아와 와라와라들을 잡아 먹는다. 와라와라들은 아무런 힘없이 그저 펠리칸들에게 잡아먹힌다. 그러던 중 히미라는 인물이 하늘로 불을 쏘아 올리며 펠리칸들을 쫓아낸다. 펠리칸들은 불에 타며 떨어지고 불은 와라와라들까지 태워버린다. 마히토는 히미에게 와라와라들이 불에 탄다며 그만하라고 했지만 키리코는 고맙다고 말한다. 마히토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거기서 불에 타 죽기 직전인 펠리칸을 만나고 펠리칸에게 왜 와라와라를 먹는지 물어본다. 펠리칸은 저주받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자 높이높이 날았지만 그래도 탈출 할 수 없었고 젊은 펠리칸들은 나는 법을 잊었다며 살아있는 펠리칸들은 와라와라를 먹으며 삶을 이어나간다고 말하며 죽는다.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먼저 히미는 와라와라들을 도와주기 위해 일부 와라와라들을 불태워 펠리칸을 쫒아낸다. 이는 아주 유명한 논제이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마히토는 그렇지 않다라고 답하고 키리코는 그래도 된다고 답한다. 둘중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만약 와라와라들을 태우지 않았다면 펠리칸들은 모든 와라와라들을 잡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다른 와라와라들을 위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태워져도 되는가? 그게 본인이라도 괜찮은가?"라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을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다음은 펠리칸이다. 젊은 펠리칸은 나는 법을 잊었고 살아남은 펠리칸들은 저주받은 세계를 벋어나려했지만 결국 벋어나지 못하고 약한 와라와라들을 잡아먹는다. 펠리칸들은 나쁜 것일까? 먹이가 없는 펠리칸은 죽어야 마땅한가?하는 질문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힘있는 자가 약한 자들을 잡아먹는 것이 치졸해보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약하면 잡아먹히고 강한 자는 잡아먹는다. 이 질문에도 정답이 없다. 약한 자들의 입장에서 강한 자들이 치졸해보이지만 강한자들의 입장에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약한 자들을 먹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결국 벋어나지 못했다.
앵무새 군단과 할아버지
마히토는 히미를 따라 자신이 살던 세상에 있던 똑같은 탑으로 나츠코를 찾아나선다. 마히토와 히미는 앵무새 군단을 피해 나츠코를 만나러 산실로 가게 되는데 이 세계에서 산실로 들어가는 것은 어겨선 안될 규칙이었고 앵무새 군단의 수장은 이를 빌미로 규칙을 어딘 히미를 이용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인과 거래를 하러 간다. 노인을 만난 앵무새는 세상이 그저 위태로운 돌 몇 개로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돌탑을 다시 세워 세상을 바꾸려하지만 결국 돌탑이 무너지며 세상도 같이 무너져버린다.
노인과 거래를 하고 탑을 다시 세우는 모습이 그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이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진 인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게 구성되지 않는다. 세상은 다양한 것들로 복잡하게 연결되어있으며 그들이 위태롭게 서로 관계를 맺으며 유지되고 있다. 인간이 건들여서 바로 세울 수 있을 정도의 복잡함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이런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것 같았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정말 많은 메세지를 받았다. 그런데 영화의 등장한 메세지들은 " 이런 것을 하자! ", "이런 사람들은 나빠!"와 같이 무언가를 주장하는 메세지가 아니다. 영화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진 않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와 같이 질문하고 보여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상에 답은 없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고 각자의 생각에 따라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은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여러 사람들과 사건들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점은 감독에 대한 지식이 없어 일부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다른 후기들을 찾아보며 황금 문이나 13개의 돌조각 등 감독과 관련된 내용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이건 필자의 고민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기에 조금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한 이야기안에서 기능전결을 가지고 있다기 보단 세상을 탐험하며 다양한 사건들과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단테의 신곡처럼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생각을 하나의 영화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끝까지 생각을 하며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